대략 15년쯤 된 선풍기가 한 대 있다. 특별한 디자인을 뽐내지도, 최신 기술로 무장하지도 않은 평범한 선풍기다. 그러나 여름을 나기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 될 특별한 존재다.

선풍기

매년 5월이면 선풍기를 분해해 겨우내 쌓인 먼지를 닦아낸다. 여름이 오고 있기 때문이다.

공구함에서 적당한 드라이버를 골라 망 고정용 볼트를 푼다. 앞망을 조심스레 떼어내면 분해는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날개 고정용 플라스틱 덮개를 돌려 빼내고 날개를 들어낸다. 마지막으로 뒷망 고정용 죔쇠를 풀면 세척 준비는 끝이다.

대야에 물을 받고 세제를 살짝 푼 다음 분해한 부품들을 넣어 때를 불린다. 부드러운 스펀지 수세미로 하나하나 때를 벗겨내고 흐르는 물에 헹군다.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내고 역순으로 조립한다.

경건한 마음으로 이 의식을 끝내면 비로소 여름을 맞을 준비가 된 것이다. 선풍기를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시원해진다. 금새 선풍기로는 버틸 수 없는 여름날이 올 테지만…


낮 기온은 점점 올라가고 환절기 감기를 겪었다. 여름 옷을 꺼냈고 선풍기를 준비했다.



그리고 여름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