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여름

쓸데없는 잡담이 오가는 대학 동아리 단톡방에 8.15 동문회에서 공연 한번 해보자는 말이 던져졌다. 연습할 곡을 골랐고 스튜디오를 빌렸다. 대략 10년 만에 풀 밴드로 합주를 했다. 첫 합주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첫-합주


그러나 오랜만의 합주로 한껏 좋아진 기분을 주체하지 못한채 격렬히 연주하던 나는 손가락에 상처를 입었다. 드러머는 휴가 중 발가락 부상을 당했다. 그렇게 공연은 무산되었다.

팀-북산

사실 동문회에 가지도 않았다.


가을이 되었고 부상자들이 회복되었다. 2019년 여름을 목표로 다시 합주하기로 했다. 그러나 준비 기간이 길면 긴장감이 떨어지고 지루해지기 마련이다. 각자의 욕심 때문에 선곡 과정에서 의견 충돌도 잦았다. 생업이 있고 가정이 있는 멤버들의 일정을 맞추기는 더욱더 쉽지 않았다. 합주가 끝나고 나면 일상에 치여 다음 합주가 임박하기 전까지 악기를 꺼내 보지도 않았다.

그리고 2019년 여름

어찌 됐건 꾸역꾸역 4곡을 맞춰서 올라간 무대는 황망했다. 리허설 때는 그렇게 잘 들리던 모니터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잘 잡았다고 생각했던 기타 톤도 뭉개졌다. 마지막 곡을 연주할 때는 기타 튠이 나갔다. 연주가 엉망이더라도 노래로 관객을 제압하라고 당부해 올린 보컬의 음정과 함께… 억지로 입학 20주년 기념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던 동문회 공연은 그렇게 흑역사로 남았다. 과거에는 없던 선명한 영상은 덤이다.

부끄러운 공연 영상 멀쩡해 보이는 사진으로 대체되었다.


사실 나는 공연보다는 합주, 그 자체를 좋아한다. 멤버들과 좋아하는 음악을 이야기하고 맞춰가는 과정이 좋고, 합주의 그 뜨거움이 좋고, 합주가 끝난 뒤 마시는 차가운 맥주 한 잔이 좋다. 공연은 부수적이다. 합주를 하다 보면 발생하는 이벤트일 뿐이다.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우리의 합주는 처음부터 끝까지 공연이 목표였고 각자의 욕심을 표출하며 파국으로 달려갔다.


우리 다시는 하지 말자

리허설을 마친 나는 "우리 다시는 하지 말자"라고 말했다. 공연하기도 전에 이미 스트레스가 끝까지 차올라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만 여유가 있었더라면 공연에서 폭발시켰겠지만, 이미 한계를 넘어선 스트레스는 날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무기력해진 마음으로 올라간 무대의 결과가 좋을 리 없다. 다른 멤버들은 어떻게 느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아마도 공연 끝의 공허와 무기력은 비슷했을 것이다.

빈-무대

쥐어짜 낸 마지막 청춘의 여름은 뜨거운 8월의 열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황망히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