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에 대한 글을 시작하며…
일단 몰입이 무슨 뜻인지 부터 알아보자. “몰입”이라는 단어를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명사] (어떤 대상에) 깊이 파고들거나 빠짐
즉, 교양있는 사람들이 널리 사용하는 현대 한국어로 바꾸자면 덕질이라 할 수 있다. 사실 나는 덕질에는 명함을 내밀 수 있을 만큼의 내공이 쌓이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에 몰입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기엔 적합하지 않다. 자고로 덕질이라 함은 하나의 분야에 대해 큰 덕을 쌓아야 하지만 배가 산만하기 그지 없는 나는 한가지 분야에 대해 덕을 쌓기도 전에 다른 분야에 관심을 가짐으로써 전체 덕량은 많아도 분야별 누적 덕량은 초라할 수 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숙제이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우리집은 가난했었고 숙제는 꼬박꼬박 잘하는 착한 어린이였다. 지금은 이미 중년이지만… 물론 흥미로운 주제이기도 하다.
뜻 밖의 몰입
덕량은 부족하고 산만하지만 몰입하는 경우는 분명 있다. 몰입은 항상 의도치 않게 찾아온다. 다만, 이런 뜻 밖의 몰입이 시작되는 시퀀스는 대부분의 케이스에서 유사한 경향을 보인다.
글을 쓰거나 코딩을 하다가 막히는 부분 생기면 검색을 시작한다. 그런데 검색 결과 중 평소에는 관심도 없던 주제의 폰트가 유난히 커 보인다. 분명 다른 주제의 표제어와 같은 h3 사이즈인데도 h1 같은 느낌이다. “기분 탓이겠지” 하고 넘어가기엔 이미 대웹서핑시대가 시작되었다.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퇴근 시간. 이렇게 오늘도 월급도둑이 된다.
월급도둑이 되는 시퀀스를 주도면밀하게 분석해보았다.
- 남의 떡이 커보인다. 즉, 내가 찾던 주제보다 곁다리 주제에 더 끌린다.
- 그래서 곁다리 주제를 보기 시작하면 또 그 주제의 곁다리 주제에 더 끌린다.
- 반복한다.
정리하자면 “남의 떡 리커시브” 상태라 할 수 있다. 얼핏 보기에 괴랄하기가 판교역에 그지 없는 용어가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보다 더 적확한 표현이 있을까? 라고 자뻑하고 있다.
계획된 몰입
그런거 없다. […]
힘을 주면 줄 수록 속도는 떨어진다. 편안한 자세로 한순간에 모든 것을 집중하는 것이다.
쿵후보이 친미의 명대사다. 몰입도 비슷하다. 의도적으로 몰입하기 위해 억지로 집중해봐야 몰입도는 떨어진다. 중요한 것은 편안한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열반에 들 듯이 몰입 상태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몰입하는데?
내가 몰입하기 위한 조건은 단 하나, 바로 흥미다. 앞서 말했던 뜻 밖의 몰입의 트리거가 되는 것은 우연히 발견한 표제어에 대한 흥미였다. 흥미만큼 좋은 동기는 없다. 내가 하고 싶어서, 내가 재미있어서, 내가 즐거워서 할 때만큼 효율이 수직상승하는 상황이 또 있을까?
고로 업무상 몰입은 당연히 그 업무에 대한 흥미가 있어야 발생한다. 흥미가 없었다면 이미 다른 직업을 찾고 있었을 것이다. 물론 하기 싫어도 해야하는 일들이 왕왕 있지만 전반적으로 이 업계의 일들은 엘글루타민산나트륨 같은 것을 끼얹은 듯 감칠맛 나는 일이 많다. 예를 들어, 당최 이유를 알 수 없는 크래시의 원인을 파헤치는 작업은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만큼 흥미진진하다. 프로세스를 처참히 살해한 범인의 정체는!!!
몰입에 대한 글을 마치며…
끝! (역시 이 단어를 쓸 때 가장 몰입할 수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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