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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를 넘기긴 했지만 얼마전, 라이언 맥긴리(Ryan MaGinley)의 사진전 “청춘, 그 찬란한 기록”에 다녀왔습니다. 전시된 대부분의 사진을 맥긴리의 웹사이트, 시규어 로스의 앨범 자켓, 기타 매체들을 통해 이미 접했지만 큰 사이즈의 인화물로 감상하는 것은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 왔습니다. 특히 Road Trip 시리즈의 Somewhere Place라는 작품은  촬영 장소로 아득히 빨려들어가는 듯한 기분에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모두 다 같이 빨려 들어가봅시다!

모두 다 같이 빨려 들어가봅시다!

 

라이언 맥긴리는 음악팬들에게 아이슬랜드 출신의 세계적인 슈게이징 밴드 시규어 로스(Sigure Rós)가 2008년 발매한 음반 Með Suð Í Eyrum Við Spilum Endalaust의 자켓 사진으로 더 잘 알려진 스냅 사진 아티스트입니다. 그러나 오늘 이야기할 곡이 시규어 로스의 곡은 아닙니다. 사진전의 제목에 좀 더 주목해 봅시다.

 

바로 이 앨범자켓이 맥긴리의 작품입니다.

바로 이 앨범자켓이 맥긴리의 작품입니다.

 

“청춘, 그 찬란한 기록”. 최근 몇년간 이와 같이 “청춘” 이라는 딱지를 붙인 마케팅이 부쩍 늘었습니다. 특히 도서 부문에서는 우후죽순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될만큼 많습니다. 온라인 서점에서 “청춘”이라는 단어로 검색을 하면 4천건이 넘는 결과를 보여줄 정도입니다. 도서 뿐만 아니라 영화, 음악, 공연 등 문화계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는 그야말로 문화계의 굉장한 셀링 포인트(Selling Point)가 아닐 수 없습니다.

 

왜 이렇게 “청춘”이 주목 받고 있을까요? 아니 예전에는 “청춘”에 주목하지 않았을까요? 아닙니다. 예전에도 당연히 청춘은 문화계의 주요 화두였습니다. 80년대까지는 주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느라 바쁘게 세월을 보냈던 중장년층이 지나간 청춘을 그리며 노래했고,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된 이후에는 점점 그 연령층이 낮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지나간 청춘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닌, 현재의 청춘을 어떻게 소비할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가 되었습니다.

 

청춘은 더 이상 그리움의 대상이 아닙니다.

청춘은 더 이상 그리움의 대상이 아닙니다.

 

청춘은 젊고 아름답지만 세파를 헤쳐나가기엔 여리고 경험이 부족합니다. 쉽게 상처를 입고 아파합니다. 그래서 각자의 경험과 노하우를 나누며 공감하고 위로받고 상처를 치유합니다. 즉, 현대 사회의 주요 문화 소비 주체인 청춘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힐링(healing)”을 부각시킨 것이 청춘 마케팅 열풍의 핵심인 것입니다.

 

청춘 마케팅 열풍에 대해 이야기 하다 보니 서두가 길어졌습니다. 오늘 이야기할 곡은 20세기말 전세계 청춘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며 심금을 울렸던 90년대의 청춘 송가, 라디오헤드(Radiohead)의 Creep입니다.

 

 

Creep은 유약한 청춘의 단상을 노래한 전형적인 청춘 송가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백은 커녕 다가서지도 못하고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마음만 졸이던, 열등감에 휩싸여 서툴고 나약하기만한 짝사랑의 아픔을 노래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적어도 한번은 겪어 보았을 상황입니다.

 

첫사랑이자 짝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영화 “건축학 개론”이 국민적인 공감을 얻으며 대박을 터트린 것처럼, Creep 역시 비슷한 감정을 공유하며 세계로 뻗어나갔습니다. 영어로 된 가사의 의미를 모르더라도 곡 자체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만큼 병신같이 처절했고 절실했고 애처로웠습니다.

 

radiohead_001

 

라디오헤드는 Creep으로 단숨에 세계적인 밴드가 되었습니다만 곡의 이미지가 너무 강한 나머지 “Radiohead = Creep”이라는 공식이 성립되어 버렸습니다. Creep이 수록된 Pablo Honey 앨범 이후로 The Bends, OK Computer 등의 명반을 줄줄이 내놓았지만 대중이 원하는 곡은 여전히 Creep이었고, 기자들이 원하는 이야기도 Creep이었습니다. 아마도 내한한 해외스타가 인터뷰마다 “Do you know Gangnam Style?”이라는 질문을 받고 말춤을 춰달라는 요청에 시달리는 기분이 아니었을까요? 자칫하면 Creep만을 남기고 사라져버린 소포모어 밴드가 되어버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라디오헤드는 Creep에서 벗어나기 위해 결단을 내렸습니다. 더이상 이 곡을 연주하지 않기로 한 것입니다. 이제 그 곡은 음반에서만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상식이 되었습니다. 객석의 누구도, 어떤 기자도 그 단어를 꺼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2003년 여름, 썸머소닉 페스티벌에서 마지막 곡을 남겨둔 라디오헤드의 보컬 톰 요크(Thom Yorke)는 다음과 같은 멘트를 했습니다.

 

This is very lovely song! I like this song!!

 

그리고 울려퍼진 곡은 바로 Creep이었습니다. 직접 현장에서 보지 못하고 영상으로 보았지만 톰이 말하는 순간 “드디어 왔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전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일개 관객, 아니 시청자가 이런데 라디오헤드는 이 곡을 얼마나 연주하고 싶었을까요? 비록 밴드를 잠식해 버린 애증의 곡이지만 자신들의 굉장한 청춘을 만들어 준 곡을 버릴 수 밖에 없었던 현실을 극복하고 다시 연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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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라디오헤드는 여전히 이 곡을 자주 연주하진 않습니다. 이 곡이 그들의 전부는 아니니까요. 밴드의 매력을 보여줄 훨씬 많은 명곡들이 있고 계속해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톰의 오징어댄스는 날이 갈 수록 섹시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Creep 보다는 오징어댄스를 자제해야할 시기가 아닌가 싶네요.

 

서두에 말했듯이 이제 청춘은 더 이상 그리움의 대상이 아닙니다. 과거를 추억하는 것도 좋지만 그 안에 빠져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큰 실책입니다. 아직 청춘의 터널에 있는 그대. 그대의 청춘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고 더 아름답게 만들어 가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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